[시사픽] 여명이 걷어진 17일 오전 7시 천안향교(전교 이인섭) 회원 120여명은 대형버스 3대에 나눠 타고 경북 성주로 향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따라 경북에 들어서자 즐비하게 늘어선 비닐하우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김천 일원 포도와 성주 일원의 참외가 뜨거운 열기에 맛있게 익는 달콤한 향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3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웅장한 모습의 성주향교에 도착했다.
때마침 옛 선비들의 기품을 갖춘 빨간색 관복 차림의 성주향교 전교와 유생복장의 전 전교를 비롯 총무장의가 문 밖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봉심을 마친 천안향교 장의일행은 명륜당에 올라 성주향교 총무장의의 성주향교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들었다.
성주향교는 25인의 성현을 모신 향교로 1398년(태조7년) 설립됐다. 성주향교는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을 잇는 한국 주자학의 전통 계보를 잇는 학맥을 지녔으며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향교이기도 하다.
특히 강호 김숙자가 이곳에서 강학을 했으며 점필재가 입학한 곳이 바로 성주향교다.
성주향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진격로에 위치해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정문인 만화루가 불에 타 소실됐으나 최근에서야 다시 복원됐다.
다행히 보물 1575호로 지정된 대성전이나 지방문화재인 명륜당은 화마를 피해 갔다.
성주향교는 문중에서 추천한 추천자를 대상으로 족보를 대조해서 입학생을 받는다고 한다.
선비의 고장 경북에서도 이름난 성주향교가 명불허전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현재 성주향교는 대성전 중앙에 5성위를 모시고 주변에 송조의 정자와 주자, 그리고 아국 18현의 위패가 봉양돼 있다.
우리는 오전 10시 30분 쯤 성주향교를 뒤로 하고 경북 김천 황학산 직지사로 향했다.
직지사는 한국불교 1600년의 역사와 그 세월을 같이 한다. 서기 418년 아도 화상에 의해 세워진 직지사는 도리사와 함께 개창됐다.
사명 직지는 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창건주 아도 화상이 일선군 냉산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가 있다고 했다고 해 직지사라 작명했다는 전설도 있다.
직지사는 호국불교를 상징하는 사찰로 한국불교 조계종 8교구의 본사로 아름다운 경내가 뭇 사찰 중 으뜸으로 꼽힌다.
직지사가 호국불교의 명성을 얻은 것은 사명대사 유정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명대사는 이곳 직지사에서 불문에 들어와 주지를 지냈다. 그는 스승인 휴정의 뜻을 받들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병을 모아 묘향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와 함께 각종 전투에 참여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도꾸가와 막부와 협상을 통해 3000여명의 포로를 반환받았다. 이 같은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명각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또 직지사의 천불상을 안치한 비로전과 한글로 알기 쉽게 지옥에서의 일을 그려 넣은 명부전도 둘러 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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