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픽] '장마'란 무엇일까, 기간은 언제인가. 언제부턴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기억하는데, 장마라하면 집안에 느닷없이 곰팡이가 낄 정도로 거의 한 달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눅눅한 빨래와 옷가지들을 만지작거리며, 언제 장마가 끝나려나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헌데 요즘 장마는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적 현상이라 이해하여도 매번 형태가 다르고 불규칙적이어서, 장마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난해합니다.
장마의 특성을 "이렇다"라고 선언하기 어려운 해가 반복되다보니, '봄장마', '가을장마', '마른장마'와 같이 요상하게 파생된 용어도 자주 듣게 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기상학적 정의로 장마는 "정체전선의 영향을 받아 내리는 비"여서 정체전선 존재가 주요 기준이 되나, 태풍, 대기 불안, 저기압, 기압골 등 다른 요인에서 비롯되는 강수가 많아져 통상적인 개념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지요.
이미 기상청은 1961년부터 매년 5월 하순에 해오던 장마 예보를 2009년 중단했습니다. 대신 "강수 예보"로 전환했습니다. 한반도 기후변화로 장마가 아닌 기간에도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못하게 광범위하고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기상현상으로 우리는 기후변화가 일상까지 침범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지난해 기상청의 '2023 기후변화' 보고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지난해 한반도는 2023년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무더운 해(연평균 기온 13.7℃, 종전 최고 기온 2016년 기록 13.4℃ 상회)였고, 9개 지역에서 역대 최고 강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특히, 국지성 호우가 극심했고 평년에 비해 강수량이 약 30% 이상 증가했다 합니다.
극단적인 기상현상으로 지난해 우리 옆 지역인 청주에서도 뼈아픈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그 일로 우리는 600mm의 폭우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선 2주 넘게 계속된 폭우와 홍수로 2백 명을 넘는 인명피해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어렵사리 남은 주민들은 더 이상 버티질 못해 삼삼오오 마을을 떠나고 있다 합니다.
파나마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선 주민 전체가 집단 이주를 하였다는데, 거리 곳곳이 바닷물에 잠길 정도로 해수면 상승의 수치가 매년 큰 폭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1960년대 연평균 1mm에서 최근 3.5mm).
"기후 난민" . 국제 NGO 단체인 IDMC(자국 내 난민감시센터)는 정치 혹은 전쟁난민(2천만 명)보다 기후 난민이 더욱 많다는 경악할 만한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국제이주기구의 예측으로는 2050년에 전 세계 기후 난민이 10억 명에 이를거라고 하니, "장마"의 이상함을 그저 시기와 강수량의 변화만으로 여기기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닌 것이지요. 심지어 기후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출산파업". 여권 신장 차원에서 출산과 사회활동을 병행하려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과거 캠페인이, 이제는 환경문제 때문에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란 단어를 들으면 몸서리부터 치게 됩니다. 그만큼 그 폐해와 불편부당함에 대해 선대와 역사로부터 학습하고 경험해 온 덕분이죠. 그렇지만 기후변화와 이상 기상현상은 예측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변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류가 마주한 일생일대의 고비를 어떻게 대응해 가야 할까요? 누군가는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열쇠는 과학이라고 말합니다만 근본적인 것은 사고의 전환입니다.
"현재 누리는 안락과 편안함은 미래의 불편을 초래하고, 우리 아이들의 비명을 불러온다"라는 뼈아픈 각성과 당장의 실천입니다.
직원 여러분, 지난해 국지성 호우로 발생한 인명피해를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토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철 재난대책본부가 가동되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겠지요.
나 한 사람이 수백 명의 시민을 구한다는 사명감. 미래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평온한 일상을 선사한다는 책임감으로 재해재난의 고비를 극복해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