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미국의 7만5천 건의 산업재해를 면밀히 분석하여 만들어낸 법칙입니다.
그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가 나왔고,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 하인리히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사소한 것이 큰 사고를 야기'하고, '작은 사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연쇄적 사고로 이어진다'고 정리됩니다.
작은 조짐도 가볍게 넘기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선박 옆구리에 난 갈라진 금을 무시하거나 못 보고 지나쳐 버리면, 작은 결함이 큰 사고로 번지듯, '운이 나빠서', '실수'로 일어나는 재앙은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하인리히 법칙은 무수히 많은 공사현장의 산업재해, 자연재해 및 사회경제적 위기를 논할 때 널리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을 모범적으로 극복한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9.11테러 당시, 세계적 금융회사인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입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리스트들이 뉴욕 세계뮤역센터 건물을 보잉항공기로 충돌시켜 붕괴하게 만들고 수천명의 사상자를 냈던 사건.
사고 당시, 건물 남쪽 22개 층에는 2700여명의 모건스탠리 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으나, 모두 신속하게 대피하여 희생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전에 구축해 둔 세군데 임시 근무처에 재빨리 다시 모여 업무를 재개했다 하니 가히 놀라운 일입니다.
알고 보니, 치밀한 재난대비 메뉴얼을 만들어 8년간 상시적으로 직원들을 상대로 치밀한 훈련을 해왔다고 합니다. 임직원들의 불평과 불만이 쏟아졌지만 '연봉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기조로 수많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안전책임자는 언젠가는 일어날지 모를 사고의 조짐들을 놓치지 않고 대비하는 '인사이트(insight)'가 있었던 것이지요.
하인리히 법칙이 주는 인사이트는 재난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백 번 말해도 그 중요함을 강조하는데 모자라지 않는 인공지능(AI)기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창업 30년 만에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며 미국 반도체 1위 기업이 된 엔비디아(NVIDIA).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황'은 반도체 개발자로 일을 하던 어느날, 게임과 멀티미디어에 대한 젊은 층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컴퓨터의 미래는 게임이라는 '그래픽 카드'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두가 가장 빨리 연산을 처리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일에 매진할 때, 그는 현실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하는 그래픽 카드 개발이라는 새로운 묘수를 꺼내 들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소비자들이 컴퓨터의 색상과 모양에 유난히 흥미를 보이는 점에 착안하여 새로운 디자인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다가서서 대성공한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습니다.
현재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더욱 활용하여 생성형 AI의 최대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판을 흔들게 될, 소비자의 미세한 조짐들을 찾아낸 스티브 잡스와 젠슨황의 혜안에서 21세기판 하인리히 법칙을 체감하게 됩니다.
최근 전북 부안에 진도 4.5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때이른 더위가 벌써부터 기승을 떱니다. 이런 기상변화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조그만 조짐들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작은 조짐을 놓치지 않는 세심한 주의를 늘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장마가 6월 20일부터 시작된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