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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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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벌레

최민호 시장의 월요편지 #8

1최민호시장.jpg

 

[시사픽] 배추벌레

 

1960년대. 

잘 살아 보자고 온 국민이 밤낮으로 일할 때 일이라고 합니다. 

대만에서 한국과 당시 자유중국 간에 국제회담이 열렸습니다. 입장은 우리가 아쉬운 처지. 

항상 그렇듯이 국제회담에는 낮에 긴장된 회의가 있으면 저녁에는 화려한 만찬이 있기 마련입니다. 만찬에는 장개석 총통의 주최로 영부인 송미령 여사가 동반했습니다. 

우리 측 사절단은 말단실무자로서 입직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외교관까지 참가했습니다. 화려하지만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만찬. 절차가 복잡하고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마음졸이며 진행하는데, 이 젊은 외교관의 식사에 아찔할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외교관의 음식 접시에 죽은 배추벌레가 들어 있었습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만찬 준비상의 실수였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곤혹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뒤에 있는 의전관계관을 불러 접시를 바꾸어 달라고 할 것인가. 슬쩍 모르는 채하고 배추벌레를 집어내고 식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남기는 척하면서 배추벌레만 빼고 대충 식사를 마칠 것인가.

당혹한 가운데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배추벌레를 음식에 싸서 태연히 먹어버렸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였던 이 외교관의 행동에 무언가 이상이 있었다는 낌새를 알아챈 사람은 단 한 명. 영부인 송미령 여사였습니다.  

만찬이 끝난 뒤 영부인은 이 젊은 외교관을 조용히 불러 물어봤습니다. 음식에 어떤 이상이 있었느냐. 외교관은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묻는 듯한 집요한 물음에 그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영부인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접시를 바꾸어 달라면 되지 그것을 그냥 먹어버렸냐고. 

"그 방법이 더 당당하였을는지 모르겠다”. 외교관이 답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있을 수도 있는 실수로 인해 자유중국 측 의전에 체면을 손상케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실수 때문에 주방장이 징벌을 당한다면 모처럼 우리가 쌓아온 자유중국과의 우호적인 분위기에 공연한 오점이 남겨지게 되니 국가적 차원에서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답니다. "차라리 내가 그 배추벌레를 모르는 채 먹어버리면 다 끝나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잖아도 만찬은 너무 맛있었다.”

얘기를 들은 송미령 여사가 감탄하며 말씀하셨답니다.

"대한민국에 저런 공무원이 있는 한 한국은 틀림없이 발전할 것이다”라고. 

공직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저 시험을 거쳐 공직에 발을 들이면서 선배로부터 들은 실화입니다. 가슴이 뭉클하며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무엇인가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공직이란 얼마나 멋진 것이며 스케일이 큰 것인가요. 가난에 찌든 내 나라, 내 국민을 부강하게 하고 당당하게 세계를 겨루는 그런 국가로 만들어 내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라 한다면, 무엇인들 가리겠습니까. 무언들 못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선배들 이야기에 가슴 떨며 저 푸른 하늘의 구름이라도 안아 올릴듯한 벅참으로 공직이라는 사회를 마주하였습니다. 

제 나이 25살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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