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픽] 제가 어릴 때였습니다.
날마다 먹는 김치를 왜 차례상에는 올리지 않는가?
의아해서 어른들께 여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아주 답이 간단했습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예법을 정리한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참고하여 차례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례집람을 편찬할 때는
우리나라에 고춧가루가 없었을 때였습니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러니 붉은 배추김치를 올리라는 내용을 기록할 수 없었지요.
그러면 지금도 김치를 차례상에 올리면 안 되는 걸까요?
시대와 음식문화의 변화에 따라 차례상도 변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에도 대추, 밤, 감, 배(조율시이: 棗栗柹梨)는 왜 꼭 빼놓지 않고 차례상에 올릴까요?
어떤 분은 대추 씨가 하나라 왕을,
밤은 껍질이 세 개라 삼정승을,
감은 씨가 여섯 개라 육판서를 뜻해
벼슬 순서대로 조율시이를 상에 놓는다고 설명합니다.
참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차례라 하면 집안의 조상에게 올리는 가정사인데
느닷없는 중앙의 벼슬이 무슨 곡절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차례상 과일은 벼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대추나무는 암수가 한 그루 쌍을 이뤄
피어나는 꽃마다 열매가 열립니다.
번성하는 자손을 뜻하는 것이요.
밤은 땅에 심으면 싹이나 나무가 되어도
씨가 되는 밤이 썩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습니다.
근본(조상과 부모님)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감나무도 참 희한합니다.
감을 심으면 그 자리에 감 대신 아주 작고 떫은
고욤이 열립니다.
감을 보려면 감나무 가지를 고욤나무에 접붙여야 합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좋은 배필을 얻어서 좋은 자손을 두라는
축복의 뜻이 있습니다.
조상들의 통찰력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홍동백서, 고기와 나물 등의 차례상 음식도 원칙이야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정성된 마음과 전통의 참뜻이 아닐까요?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들의 진정한 뜻은 가족의 번창과 화목일 것입니다.
추석 차례를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지낸다기 보다
"살아있는 자손들의 화목을 위하여" 지내는 의미도 동시에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하니 이번 명절에는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기 보다는
온 가족이 모여 각 가정의 형편에 맞게
조상들에게 감사하며
가족들이 행복한 명절을 지내는 것이 더 실속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직원 여러분.
예년보다 추석 연휴가 길어진 덕분에
말 그대로 '황금' 연휴를 즐기게 됐습니다.
올 한가위에는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마음이
보름달처럼 크고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