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발표와 이것을 받아 들고 팔각정에 올라선 청년의 외침... 그리고 만백성의 함성... 우리는 이때를 대한민국이 태동한 첫번째 봄이라 말합니다.
민족대표 33인. 그런데 사실은 숨겨진 34번째 인물이 존재합니다.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캐나다인 선교사였던 프랭크 윌리엄스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 이름 석호필(⽯虎弼). 돌같이 굳은 마음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분은 33인 민족대표들과 함께 거사를 계획했고, 당시 일제의 만행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캐나다 선교본부에 보고하는 등, 동방의 변방에서 일어난 제국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폭압을 널리 알렸 습니다.
잔혹하기 짝이 없었던 제암리 학살, 수촌리 사건의 현장을 분노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사진으로 남겼고, 3.1운동때 벌어진 참혹한 상황을 1,300매에 걸친 책으로 집필하는 등 그 분이 아니면 사라질 뻔한 진실을 새겨넣었습니다.
'끌 수 없는 불꽃(quenchless fire)'.
사본은 세브란스 병원 지하실에 감춰놓고, 그 원본과 사진 기록을 캐나다로 갖고 돌아가 일본의 제국주의를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위대한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3.1 운동의 현장을 기록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스코필드 박사의 사진과 증언 기록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영영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고 결국 없었던 것이 되었겠지요.
스코필드 박사는 후에 어떻게 됐을까요.
이듬해 캐나다로 추방되어 해방 때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만, 1958년 이승만 정부가 국빈으로 초빙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하고 사후에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모셨습니다. 박사는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한국인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1919년 3.1운동을 이끈 한국인들을 기억하라. 이 말은 내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더 넓은 가슴과 뜨거운 인류애로 인간을 사랑한 진짜 한국인이 아닐런지요...
한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외국인들은 또 있습니다. 일왕의 폭탄 살해를 시도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열렬히 변호했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 2004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입니다.
세종시 부강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한국 이름 박문자). 히로히토 왕세자 암살을 기도하여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감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을 추서했고 그가 살았던 우리 시에서는 추도식을 열고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헌신을 기리기도 하였죠.
헤이그 밀사를 파견한 선교사이자 사학자, 그리고 한글학자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그 분은 건국훈장뿐만이 아니라 2014년 한글날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이자 대한매일신보 창간인 영국인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Bethell). 제암리 사건과 항일 의병의 존재를 사진 기사로 전 세계에 알린 종군기자 프레더릭 매켄지(Frederick Mckenzie) ...이 분들 모두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분들입니다.
저는 이런 외국인들을 보면서 국민과 인간은 다른 차원의 존재로 살아야 하고 또 보아야 할 때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 인간을 인간 자체로 보지 않고 국가를 개입시켜 바라본 오류를 범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과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대한 외국인들...
문득 미국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