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11-24 08:13

  • 맑음속초4.2℃
  • 맑음-3.2℃
  • 맑음철원-3.6℃
  • 맑음동두천-1.9℃
  • 맑음파주-1.8℃
  • 맑음대관령-5.5℃
  • 맑음춘천-1.8℃
  • 맑음백령도7.2℃
  • 맑음북강릉3.4℃
  • 맑음강릉4.2℃
  • 맑음동해3.3℃
  • 맑음서울2.7℃
  • 맑음인천3.4℃
  • 맑음원주0.8℃
  • 구름조금울릉도6.6℃
  • 맑음수원0.4℃
  • 맑음영월-0.6℃
  • 맑음충주-1.2℃
  • 맑음서산0.4℃
  • 구름조금울진3.2℃
  • 맑음청주2.6℃
  • 맑음대전1.3℃
  • 맑음추풍령0.6℃
  • 안개안동0.5℃
  • 맑음상주-0.3℃
  • 구름많음포항7.5℃
  • 맑음군산1.7℃
  • 구름조금대구4.0℃
  • 맑음전주4.0℃
  • 구름많음울산6.0℃
  • 맑음창원8.5℃
  • 맑음광주3.9℃
  • 구름많음부산9.6℃
  • 구름조금통영8.6℃
  • 구름조금목포5.8℃
  • 구름조금여수9.2℃
  • 구름조금흑산도10.2℃
  • 구름많음완도6.5℃
  • 구름조금고창-0.6℃
  • 구름조금순천-0.3℃
  • 박무홍성(예)-1.3℃
  • 맑음-0.2℃
  • 흐림제주9.6℃
  • 구름조금고산9.9℃
  • 구름조금성산10.7℃
  • 구름많음서귀포10.3℃
  • 구름조금진주3.5℃
  • 맑음강화0.5℃
  • 맑음양평0.2℃
  • 맑음이천-0.5℃
  • 맑음인제-2.0℃
  • 맑음홍천-2.2℃
  • 맑음태백-4.3℃
  • 흐림정선군-1.1℃
  • 맑음제천-2.4℃
  • 맑음보은-1.3℃
  • 맑음천안-1.3℃
  • 맑음보령3.2℃
  • 맑음부여-0.4℃
  • 맑음금산-0.3℃
  • 맑음0.6℃
  • 맑음부안1.2℃
  • 맑음임실-0.3℃
  • 맑음정읍1.0℃
  • 맑음남원1.3℃
  • 맑음장수-1.1℃
  • 맑음고창군1.4℃
  • 맑음영광군1.1℃
  • 구름많음김해시7.3℃
  • 맑음순창군0.1℃
  • 구름조금북창원7.4℃
  • 흐림양산시9.6℃
  • 구름조금보성군4.3℃
  • 구름조금강진군3.8℃
  • 구름조금장흥2.7℃
  • 구름많음해남2.4℃
  • 구름조금고흥7.3℃
  • 구름조금의령군4.4℃
  • 맑음함양군1.0℃
  • 구름많음광양시7.8℃
  • 구름조금진도군4.5℃
  • 맑음봉화-1.1℃
  • 맑음영주-1.8℃
  • 맑음문경-0.4℃
  • 맑음청송군-1.7℃
  • 맑음영덕3.0℃
  • 맑음의성-0.7℃
  • 구름조금구미2.0℃
  • 구름많음영천1.3℃
  • 구름많음경주시5.2℃
  • 흐림거창0.9℃
  • 구름조금합천2.9℃
  • 구름많음밀양6.1℃
  • 구름조금산청1.1℃
  • 구름조금거제7.1℃
  • 구름많음남해7.7℃
  • 구름많음8.3℃
기상청 제공
시사픽 로고
강선여 선생 추모제향 봉행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강선여 선생 추모제향 봉행

명나라에서 공자상 가져온 조선 중기 학자

강선여 선생 추모제향 봉행

 

[시사픽] 조선시대 문신 강선여 선생을 추모하는 제향이 지난 12일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에서 봉행됐다.

이날 제향에는 진주강씨 문현교대종회 후손 60여명이 참석해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강선여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06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161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공조좌랑·예조좌랑·병조좌상 등을 역임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외직으로 나가길 원해 영천 군수를 역임했고 1626년에는 면천군수를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나 청양에서 살았다.

그는 1628년 명나라 희종 황제가 서거하자 조선의 조문사절로 방문, 명나라 황제 예종으로부터 공자 화상을 받아 돌아오게 된다.

이 공자상 탁본은 현재 대치면 장곡리에 있는 백제문화체험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강선여 선생은 1647년 74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강직한 성품과 효행은 당대 문인들 사이에서 칭송이 높았다.

그의 업적은 2018년 청양군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된 신도비에 잘 기록되어 있다.

강석동 진주강씨 문현교대종회장은 “그분을 기리기 위한 신도비에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쓰고 김수항이 전자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며 “조선시대 명필이 직접 쓴 공적비문이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포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