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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이맘때가 되어 일부 언론 보도에서 망한 조선의 마지막 황실 후손들의 근황이 전해질 때 국민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경멸, 증오, 연민, 외면, 차라리 무관심...
당시 조선 왕실은 너무도 무능하고 부패해 백성과 나라를 지켜주지 못한 가장 못난 왕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있어서도, 없느니만 못한 정부...그들을 잊는 것은 그러한 기록에 의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잊게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음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우리는 또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승자 일제에 의해 기록되고 공표된 기록들.
그 기록이 역사의 진실은 아니었음을 최근 또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현장이 우리 세종시 부강면이라는 것입니다.
부강면 용포리에는 한때 백년옥이라 하여 식당을 하였던 100년이 넘은 한옥집이 있고 그 일대 땅이 부자 김재식의 소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송암 김재식은 부강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종의 명으로 이주해 내려와 대한 황실 소유의 금광을 관리하여 일대의 최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가 고종의 명령으로 이주하여 부자가 되었을까요?
채굴된 금이 보부상을 통해 부강 포구를 중심으로 독립자금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점차 알려지고 있는 사실은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아버지의 명을 받아 김재식과 그 가옥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이 등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종이 우리 독립운동의 숨어있던 잊힌 가장 큰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선뜻 믿어지지 않습니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은 민족대표 33인의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였고, 미국 유학 중 안창호, 김규식, 하란사 등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1905년 귀국 후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서양 의술을 적극적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고종을 가장 측근에서 모신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윌리엄 린튼 선교사이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그의 손자 인요한 박사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말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종은 지혜로운 개혁군주였고 결코 무능하거나 부패한 왕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조선의 정부가 무력하여 나라를 일제에 빼앗겼지만, 고종은 나라를 찾기 위해 헤이그에 이준 열사를 파견하여 독립을 부르짖게 하고,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의친왕을 시켜 금광 채굴과 판매를 궁내부 특진관 송암 김재식에게 일임하였다고 합니다.
역사적 진실로 규명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사는 우리 선조들이 일제에 들킬세라 비밀리에 목숨 걸고 지킨 극히 한정된 사실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이 남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강면 김재식 가옥 인근에 있는 독립운동가 박열의 연인이자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일본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지역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생애는 구전이 되었지만 전국적인 인지를 갖게 된 것은 2017년 영화 '박열'이 개봉하고 나서입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의 조사와 고증 그리고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의 손에서 비로소 현대에 와서 독립운동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독립운동 건국훈장을 받은 때는 2018년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역사의 승자들에 의해 뒤바뀌고, 사라지고, 틀어졌을지 모릅니다.
독립투사 고 김천성 선생의 묘비명에는 ‘투사(鬪⼠)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애국이란 내 나라의 정의와 공평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니 지분이나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숭고한 말씀입니다만, 발설도, 기록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선조들의 헌신이 이렇게 묻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종시는 송암 김재식의 가옥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습니다.
지난 6월 27일에는 이러한 조선 황실의 독립운동의 숨은 진실을 밝혀보고자 세종시에서 처음으로 "세종시 독립운동 근거지 재조명"포럼을 개최한 바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독립운동의 그림자를 찾아,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헛되이 되지 않도록 부강면 일대를 국가유적지로 지정하기 위해, 더 나아가 독립운동사에 한 페이지를 채울 역사적 사실들을 재조명하고 되새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이 미래의 아이들이 보게 될 국사 교과서를 바꾸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입니다.
-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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