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04-04 07:36

  • 맑음속초4.3℃
  • 구름많음2.8℃
  • 구름조금철원0.5℃
  • 구름많음동두천3.2℃
  • 맑음파주-0.2℃
  • 맑음대관령-2.8℃
  • 구름많음춘천2.6℃
  • 박무백령도4.4℃
  • 맑음북강릉4.1℃
  • 맑음강릉4.8℃
  • 맑음동해4.7℃
  • 박무서울6.0℃
  • 박무인천5.5℃
  • 구름조금원주3.7℃
  • 맑음울릉도5.8℃
  • 박무수원4.8℃
  • 맑음영월2.1℃
  • 구름많음충주4.8℃
  • 맑음서산0.7℃
  • 구름조금울진5.7℃
  • 흐림청주7.4℃
  • 연무대전7.1℃
  • 맑음추풍령4.3℃
  • 맑음안동2.2℃
  • 구름조금상주3.7℃
  • 맑음포항5.2℃
  • 맑음군산4.4℃
  • 박무대구4.0℃
  • 박무전주6.5℃
  • 맑음울산3.7℃
  • 맑음창원6.1℃
  • 박무광주5.9℃
  • 맑음부산7.5℃
  • 맑음통영5.2℃
  • 안개목포4.0℃
  • 맑음여수7.4℃
  • 박무흑산도5.1℃
  • 맑음완도4.3℃
  • 맑음고창0.4℃
  • 맑음순천1.1℃
  • 박무홍성(예)3.2℃
  • 구름많음5.7℃
  • 구름많음제주7.0℃
  • 맑음고산7.7℃
  • 맑음성산7.0℃
  • 맑음서귀포8.0℃
  • 맑음진주3.2℃
  • 맑음강화4.9℃
  • 구름많음양평4.5℃
  • 구름많음이천6.0℃
  • 구름조금인제1.1℃
  • 구름많음홍천2.6℃
  • 맑음태백-1.4℃
  • 맑음정선군-0.6℃
  • 구름많음제천1.6℃
  • 구름많음보은3.6℃
  • 구름많음천안3.6℃
  • 맑음보령3.1℃
  • 맑음부여4.4℃
  • 구름많음금산6.0℃
  • 구름많음5.5℃
  • 맑음부안4.0℃
  • 맑음임실3.0℃
  • 맑음정읍2.9℃
  • 맑음남원3.7℃
  • 맑음장수2.7℃
  • 맑음고창군2.5℃
  • 맑음영광군0.8℃
  • 맑음김해시5.2℃
  • 맑음순창군2.9℃
  • 맑음북창원6.0℃
  • 맑음양산시4.6℃
  • 맑음보성군4.8℃
  • 맑음강진군2.1℃
  • 맑음장흥1.1℃
  • 맑음해남-0.2℃
  • 맑음고흥1.9℃
  • 맑음의령군2.0℃
  • 맑음함양군2.4℃
  • 맑음광양시6.1℃
  • 맑음진도군3.6℃
  • 맑음봉화-1.8℃
  • 맑음영주1.0℃
  • 구름많음문경4.0℃
  • 맑음청송군-1.1℃
  • 구름많음영덕6.7℃
  • 맑음의성0.3℃
  • 맑음구미3.3℃
  • 맑음영천0.6℃
  • 맑음경주시1.3℃
  • 맑음거창2.7℃
  • 맑음합천3.4℃
  • 맑음밀양3.5℃
  • 맑음산청2.1℃
  • 맑음거제5.5℃
  • 맑음남해6.7℃
  • 맑음3.0℃
기상청 제공
시사픽 로고
어떤 의리를 지킬 것인가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떤 의리를 지킬 것인가

최민호 시장의 월요편지 #48

최민호 시장1.jpg
최민호 세종시장

 

[시사픽] - 어떤 의리를 지킬 것인가 -

‘국화와 칼’.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1946년 지은 불후의 명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맞닥뜨린 일본인의 행태는 서양인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고 패배의 책임을 할복으로 갚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본군의 정신문화를 파헤쳐 줄 것을 베네딕트에게 의뢰하였습니다. 베네딕트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증언과 일화, 문헌조사, 관찰을 통해 일본문화, 풍습의 심층을 해부했습니다.

그 중에서 베네딕트는 일본인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의리’(義理, 일본어로 ‘기리(ぎり)’)를 발견했습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의리를 일본 고유의 문화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서양에서나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일본의 의리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목숨까지 바쳐 반드시 보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의 문화를 ‘은(恩)의 문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것이 일본의 의리입니다.

그렇다면 베네딕트가 말한대로 의리는 일본에만 있는 유일한 문화인가?

틀렸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의리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삼국시대부터입니다. ‘의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 의리는 우리 선비들의 최고 화두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리와 일본의 의리는 무엇이 다른 것인가?

우리의 ‘의리학’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정의인가를 밝히는 학문이었습니다. 엄정하고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의리’란 정의롭고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의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소의(小義), 하나는 대의(大義)입니다. 소의는 작은 의리, 즉 나에게 베푼 자에게 보은하는 것입니다. 대의는 이를 뛰어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의로움을 행하는 일입니다.

소의라 하지만, 은혜를 베푼 자에게 보답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적 의리입니다. 문제는 소의와 대의가 부딪칠 때입니다. 이때는 말할 것도 없이 대의가 우선한다는 것이 우리 선조의 정신이었고, 우리가 배워 온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 선비들은 소의에 연연하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했고, 용감하게 대의를 행하는 사람을 대인(大人)이라 했습니다. 선비에게 소인이라 칭하는 것은 최악의 욕이었고 소인배라며 무리 배(輩)자를 붙여 경멸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거기에는 대인보다 소인들의 수가 더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선비들의 의리는 무엇이 옳은가를 탐구하고 이를 실천으로 추구하는 것이었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목숨 바쳐 보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무라이의 의리 문화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선비들의 의리 문화와 교잡되어 버린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입니다. 일본 사무라이 문화의 의리와 선비 문화의 의리는 다른 것입니다.

소의와 대의.
개념은 간단해 보이지만, 기실 무엇이 소의이고 무엇이 대의인지 정의하는 것은 분명한 철학과 논리가 요구되는 우리 선비들의 지난한 명제였습니다. 이를 선택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인격과 목숨마저 건 모험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리를 택할 것인가.
개인의 이로움에 밝기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의로움에 밝은 대인의 길.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 아닐지요.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포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